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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성평등이란?
과학은 정말 모두의 게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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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충돌 실험에 사용되는 인체 모형은
오랫동안 ‘평균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 결과, 같은 사고에서도 여성은 더 크게 다칠 확률이 높았습니다.
이건 차별일까요?
아니면 단지 기술의 기본값(default)이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자동차 안전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학과 기술이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왔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과학은 남자애들의 게임도,
여자애들의 게임도 아니다.
모두의 게임이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1960년대 TV 시리즈 스타트렉에서 우주선 엔터프라이즈의 통신장교 ‘우후라’를 연기했던 배우,
니셀 니컬스(Nichelle Nichols)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TV 속 명대사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니컬스는 NASA와 함께 직접 움직였습니다.
“흑인도, 여성도 우주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들고 NASA 여성 과학자 채용 캠페인을 벌이고,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 샐리 라이드(Sally Ride), 최초의 흑인 우주인 가이온 블루퍼드(Guion Bluford)가 실제로 탄생했습니다.
NASA는 훗날 니컬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녀는 지구와 우주, 두 세계의 경계를 넓힌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이제 연구실과 데이터 센터, 스타트업 사무실에는 확실히 예전보다 더 다양한 얼굴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
과학은 정말 ‘모두의 게임’이 되었을까?
바로 여기서,STEM 성평등(Gender Equality in STEM)이라는 질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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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성평등이란?
“단순히 여성 인원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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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성평등은
“이과에 여학생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같은 단순한 바람이 아닙니다.
UN Women은 STEM 성평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성이 STEM 분야에 동등하게 접근하고, 참여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이런 질문입니다.
• 여성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실제로 열려 있는가?
• 들어간 후, 버틸 수 있는 환경인가?
• 의사결정 테이블에도 자리가 있는가?
이 질문은
과학자가 아니라도,
개발자가 아니라도,
이미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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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젠더 격차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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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나아진 거 아닌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숫자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전체 그림부터 보겠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세계경제포럼(WEF)이 LinkedIn 노동 시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입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STEM 직군과 비(非)STEM 직군에서 여성의 비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합니다.
< STEM vs 비(非)STEM 노동시장 여성 비율 (2015–2023)>

STEM 직군에서 여성은 비(非)STEM 직군에 비해 여전히 현저히 적게 종사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그 격차는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
(출처: 세계경제포럼, Global Gender Gap Report 2023)
위쪽 선은 비(非)STEM 분야, 아래쪽 선은 STEM 분야입니다.
• 비(非)STEM 분야에서 여성 비율은 약 48~50% 수준
• STEM 분야에서 여성 비율은 약 27~29% 수준
눈에 띄는 건, 격차의 크기보다 ‘변하지 않음’입니다.
8년 동안 전체 노동 시장에서 여성 참여의 성별 구조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건 ‘유리천장’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입구부터 다른 게임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① 진입 격차 (Entry Gap)
– 누가 ‘처음’ 들어오는가
→ UNESCO Science Report 2021은, 입구 차이를 이렇게 보여줍니다.
• 전 세계 연구자 중 여성 비율: 약 33%
• STEM 전공 대학생 중 여성 비율: 약 35% 이하
• 공학·컴퓨터공학 등 일부 분야의 여성 비율: 약 28%
이미 출발선부터 균등하지 않습니다.
AI·머신러닝 같은 미래 핵심 분야로 갈수록, 이 입구는 더 좁아집니다.
→ 세계경제포럼(Global Gender Gap Report 2023에 따르면,
• 데이터·AI 관련 직군 여성 비율: 약 22%
• AI 업계 여성 임원 비율: 약 12%
세계경제포럼은 이를 이렇게 경고합니다.
“의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미래 기술은 과거의 성별 격차를 그대로 복제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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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속 격차 (Retention Gap)
– 들어오긴 했는데, 오래 못 버틴다
입구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들어온 이후에도 많은 여성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납니다.
OECD의 Gender in STEM 분석에 따르면,
• STEM 여성의 10년 내 이탈률, 남성보다 2.4배
• STEM 여성의 67%,
“경력 단절 위험이 높다”
이유는 새롭지 않습니다.
• 늘 ‘회의실에 나 혼자 여성’인 구조
• 아이 돌봄은 여전히 개인 책임
• 승진·연구비·리더십에서의 누적 배제
이런 문제들은 한 번의 차별이 아니라, 계속 누적되는 피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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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리더십격차 (Leadership Gap)
– 실험대 주변에는 있는데, 회의실에는 없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숫자로 구조를 확인해 봅니다.
아래 그래프는 세계경제포럼(WEF)이
LinkedIn 노동시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입니다.
쉽게 말하면,
STEM 분야와 STEM이 아닌 분야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직급별·STEM 여부에 따른 여성 비율>

직급이 높아질수록 여성 비율은 감소하며, STEM 분야에서 그 하락 폭이 더욱 크다.
(출처: 세계경제포럼, 『Global Gender Gap Report 2023』)
검정색 선이 STEM 분야의 고위직 여성 비율인데요, 패턴은 분명합니다.
입사 초기 단계에서는 STEM 분야 여성 비율이 약 28% 정도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직급이 하나씩 올라갈수록 상황이 달라집니다.
• Manager → Director → Vice President로 갈수록 여성의 비율은 계속 줄어듭니다.
• 그리고 최종 결정권자인 CEO 단계에 이르면 STEM 분야 여성 비율은 약 11%까지 떨어집니다.
즉, 10명 중 9명은 남성이라는 뜻입니다.
비(非)STEM 분야에서는 CEO 단계에서도 여성 비율이 약 28% 정도입니다.
이 차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STEM 조직 안의 승진 구조와 문화에 있습니다.
UN Women은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여성은 연구 현장에서 무대 뒤편에는 더 많이 있지만, 연구 방향과 자원을 결정하는 무대 앞에는 여전히 드물다.”
무엇을 연구할지, 어떤 기술을 누구를 위해 설계할지를 결정하는 목소리는 남성에 쏠려 있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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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교육 격차 (Education Gap)
– ‘상상’ 자체가 막혀 있을 때
교육 단계에서부터 이미 성별 격차는 시작됩니다.
교과서 속 여성 과학자 비율은 2% 이하로 매우 낮고, 여학생들은 이런 말을 들으며 성장하죠.
“공학은 남자들이 좀 더 잘하지 않나?”
“너는 문과 쪽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말과 이미지들이 쌓여 소녀들은 스스로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심리적 장벽을 만들게 됩니다.
UNICEF STEM 교육 분석을 보면, 많은 나라에서 여학생들은 수학·과학 성적이 남학생과 비슷하거나 더 높음에도 STEM 분야를 진로로 생각하는 비율이 훨씬 낮습니다.
▶ “STEM 분야에서 일하는 나를 상상한다”는 비율
• 여학생: 43%
• 남학생: 67%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상상 가능한 미래의 범위입니다.
글로벌 성평등 현황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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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성평등이 낮을 때 생기는 문제들
기술의 ‘기본값’이 편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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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누가 설계하느냐가 곧 ‘표준’이 됩니다.
의료 데이터가 서구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면, 여성 환자는 질환을 더 늦게 진단 받습니다.
자동차 안전 기준이 평균 남성 체형을 기준으로 하면, 여성은 교통사고에서 더 큰 부상을 입습니다.
이건 ‘착한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과 생존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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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성평등과 평화
왜 유엔은 이걸 ‘평화 이슈’로 다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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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서 SDG 5(성평등)과 SDG 9(산업·혁신·인프라)를 명확히 연결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기술 설계에 참여할수록 기후, 보건, 디지털 민주주의 같은 글로벌 과제는 더 균형 있게 해결됩니다.
세계은행과 UNDP 역시 지적합니다.
“여성의 교육·경제 참여가 높은 국가일수록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고, 사회·정치적 갈등과 폭력이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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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완벽한 답 대신, 지금 질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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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기본값은 누구?”》
계속 물어보기!
가끔은,
내가 속한 공간을 한 번 천천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 우리 학과·랩·회사에서, 여성·소수자의 비율은 어떤지?
• 중요한 회의·결정 자리에는 누가 앉아 있는지?
• 교과서와 교안, 세미나에서 반복해서 불리는 이름들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
이건 유난을 떠는 일이 아니라, 환경의 기본 설정을 조용히 점검해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강의나 세미나에서 이런 질문을 한 번쯤 꺼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
• ‘이 알고리즘은 누구에게 더 불리하게 작동할까?’
• ‘이 기술이 다른 성별·계층에게는 어떻게 영향을 줄까?”
당장 답을 내놓지 않아도 됩니다.
질문만으로도, 대화의 방향은 조금 달라집니다.
《글로벌 프로그램과 연결되기》
이미 많은 곳에서, STEM 성평등을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UNESCO – Girls in STEM / Girls in ICT
• Microsoft Women in STEM Scholarship(지역별 운영)
• 각국의 여성 과학자 네트워크, 코드 교육 프로그램, 커뮤니티 등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정보를 공유하고 연결해 주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변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사람을 더하는 방식으로 커집니다.
《개발자·연구자라면, 공정성을 코드에 남겨보기》
코드를 쓰는 사람이라면, 편향을 ‘의식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 IBM의 AI Fairness 360 Toolkit
◾ 각종 오픈소스 공정성 라이브러리들
내가 만든 모델이 어떤 집단에게 더 불리하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확인해 보는 경험.
그 과정은, 성평등을 선언의 언어에서 실무의 언어로 옮겨 적는 일에 가깝습니다.
《행동보다 중요한 질문 하나》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DNA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도 오랫동안 이름 없이 지나간 과학자였습니다.
그녀의 말은, 우리가 여기까지 해온 모든 이야기를 차분하게 정리해 줍니다.
“과학은 남자 것도 아니고 여자 것도 아니다. 과학은 인간의 것이다.”
— 로절린드 프랭클린
결국 남는 질문은 크지도,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앉아 있는 이 교실에서,
이 연구실에서,
이 회사에서,
이 기술과 지식은 누구를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이고, 누구를 밖에 남겨두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 이미 당신은 STEM 성평등이라는 변화를 향해 한 발을 내디딘 셈입니다.
변화는 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기본값을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에게서 조용히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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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리더십
#데이터로보는세상
글
최연제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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