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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해수면 올라 마을까지 덮치는 파도에 위협받는 일상


키리바시 언론보도 한겨레.JPG

1. 키리바시 타라와섬 바이리키 지역 북쪽 바닷가 주민 베베 이라타가 지난 3월 만조 때 밀어닥친 바닷물에 쓸려나간 자신의 집이 있던 곳을 가리키고 있다. 2. 2011년 9월 키리바시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키리바시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맹그로브 묘목을 심은 지역. 묘목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가운데 보이는 식수 기념 표지석은 처음엔 바다 가까이 있었으나 해안 침식 탓에 지금 위치로 옮겨졌다. 3. 타라와의 해안 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파제의 모습. 나지막한 담과 같은 규모인데다 끊어진 곳이 많아 수위가 크게 올라가는 만조 때 밀려드는 바닷물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4. 7월15일 오후 만조 때 밀려드는 바닷물로 호수처럼 변해가고 있는 타라와 에이타 지역의 비케니코라 마을. 물이 차오르는 곳에 살던 10여가구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주한 상태다.

기후변화 최전선 키리바시 가보니

7월13일 오후 키리바시 수도 타라와의 본리키 공항 구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차창 오른편으로 파란 파스텔톤 바다가 펼쳐졌다. 도로 바로 옆 바닷물 위에는 해안선 유실을 막으려고 심은 것으로 보이는 맹그로브 나무가 한 줄로 길게 이어졌다. 만조가 된 바닷물 속에 잠긴 채 윗부분만 찰랑거리는 수면 위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키리바시의 현실을 상징하는 듯했다.

재원 모자라 견고한 방파제 대신
맹그로브 나무로 해안보호 안간힘
지하수 오염탓 식수확보 가장 심각

정부 장기적 이주 계획 추진하지만
일부 주민 “섬 떠날 계획 없다”
“전기스위치 하나 끄는 행동도
작은 섬나라 우리를 돕는 일”

이틀 뒤인 15일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 인터뷰(<한겨레> 22일치 22면 참조)가 끝난 뒤 기자를 기후변화 피해 현장으로 안내한 키리바시 대통령실 공보담당관 리몬 리몬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려면 방파제를 쌓아야 하지만 재원 부족 탓에 대안으로 해안에 맹그로브 나무를 많이 심고 있다”고 말했다.

태평양의 적도와 날짜변경선 교차점에 흩어져 있는 33개 섬으로 구성된 키리바시의 2012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8만tCO₂-e(이산화탄소상당량톤)이다. 총인구 10만여명인 국민 1인당 0.8t꼴이다. 세계 평균의 8분의 1, 한국 평균의 17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토 대부분이 평균 해발고도 3m 미만의 산호섬인 탓에 지구 온난화의 피해자 대열 맨 앞줄에 서게 됐다. 과학자들은 이미 지구 대기에 누적된 온실가스가 일으키는 해수면 상승만으로도 키리바시 대부분의 지역이 40~50년 안에 사람이 살기 어렵게 될 것이라 진단한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미래의 문제로 여겨지는 기후변화가 키리바시에서는 일상의 삶을 위협하는 현실이다. 키리바시 정부기관이 모여 있는 타라와섬의 바이리키 지역 북쪽 바닷가에서 13일 저녁 만난 베베 이라타(25)는 “집 앞 해변에 있던 집이 지난 3월 만조 때 바닷물이 평소보다 훨씬 높게 밀려드는 바람에 쓰러져 새집을 뒤로 더 물려서 지었다”고 말했다. 이라타의 이웃 주민 마리아노 테이피로아(48)도 지난달 해변에 붙어 있는 집을 10m가량 뒤로 옮겼다. 모래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코코넛나무 잎으로 지붕을 덮은 키리바시 전통 가옥들은 파도가 들이쳐 바닥의 모래가 쓸려나가면 쉽게 넘어간다.

상대적으로 나은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찾아 다른 섬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늘어 수도인 타라와섬은 포화 상태다. 이주민들이 많은 타라와 서쪽 베시오 지역은 1㎢의 좁은 면적에 2만명 이상이 거주한다. 인구밀도로 보면 거의 서울 수준인 셈이다.

키리바시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타라와섬도 군데군데 끊어진 기다란 끈 같은 모습이다.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총연장은 70㎞가량 되지만 너비는 평균 450m다. 바다에서 아무리 먼 곳이라도 2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바닷물이 계속 밀려들면 더 피할 곳도 없는 형국이다.

이들을 지켜줄 방파제는 재원 부족으로 지역과 지역을 잇는 주요 도로변이나 병원과 같은 중요 시설 주변에만 설치돼 있다. 그나마 여기저기 끊겨 있는데다, 약간 넓은 콘크리트 담장과 흡사한 규모여서 바닷물 높이가 최고조에 이르는 ‘킹 타이드’에 폭풍이라도 겹치면 무용지물이다.

지난 2월 만조 때 물바다가 된 베시오 병원 앞에서 14일 만난 간호사 나모루아 데바우바(43)는 “만조 때 밀어닥치는 바닷물을 보면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타라와에서 만난 키리바시 사람들은 대부분 정부가 ‘존엄한 이주’라는 이름의 장기적인 국민 이주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해 정부가 피지에 땅을 구입한 사실을 언급하며 언젠가 피지로 가게 되리라는 기대를 표시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바이리키 지역과 본리키 공항 중간쯤에 위치한 에이타 지역의 비케니코라 마을은 키리바시 정부 관계자들이 타라와에서 기후변화 피해 현장을 보려는 사람들한테 가장 먼저 안내하는 곳의 하나다. 40여가구 가운데 이미 10여가구가 5년 전부터 만조 때만 되면 마을 안쪽까지 밀려드는 바닷물을 피해 떠난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부인과 두 자녀, 세 형제와 함께 사는 어부 토카멘 테카카우(29)의 집은 특히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는 만조 때는 수상가옥처럼 변한다. 그래도 불안하고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우리는 바다와 함께 살아와, 이렇게 사는 데 익숙하다. 키리바시를 떠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하천이나 담수호가 없는 타라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가 물 부족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스며든 바닷물로 집 근처 우물은 대부분 식수로 쓰기 어려운 상태가 됐고, 정부가 공항 주변 지하에서 뽑아올려 공급하는 물의 염분 농도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주민은 빗물을 받아 끓여 먹는다.

14일 기후변화 피해 현장을 안내한 키리바시 대통령실 방재담당관 마이클 폰은 “키리바시가 바닷물에 잠겨 사라지기 전에 먹을 물이 먼저 사라져 사람이 살 수 없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방파제의 대안으로 해안가에 심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키리바시를 지켜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2011년 9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키리바시를 방문해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맹그로브 묘목을 심었다는 지역을 15일 찾아가 보니 맹그로브 나무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기념 표지석은 해안 침식 때문에 처음 위치에서 도로 가까이로 옮겨진 상태였다.

마이클 폰 방재담당관은 “우리한테는 맹그로브보다 튼튼한 방파제 건설과 같은 기술적 지원이 시급하다. 선진국에 사는 당신들이 생활방식까지 포기하기를 바라지 않지만, 불필요한 스위치 하나를 끄는 행동만으로도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우리가 사는 이 아름다운 섬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타라와(키리바시)/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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